태조의 후삼국 통합 전략
태조, 통합, 후삼국, 전략이라는 낱말을 먼저 떠올린다. 큰 집단이 셋으로 갈라져 서로 다투던 때, 한쪽은 바닷길 장사와 물길 장악으로 힘을 모으고, 다른 한쪽은 들판과 산성을 지키며 버텼다. 태조는 성을 치는 힘보다 마음을 끌어오는 힘을 더 믿었다. 억지로만 누르지 않고, 항복한 이의 목숨을 살리고 집과 땅을 돌려주며 손을 내밀었다. 이 소식이 퍼지자, 싸움터에서 진 편도 두려움 대신 기대를 품었다.
태조는 길을 먼저 보았다. 큰 강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 산맥을 넘는 낮은 고개, 배가 쉬는 나루를 하나씩 붙잡았다. 길목을 쥐면 군사와 곡식이 막히지 않는다. 길이 살아 있으면 먼 곳의 소식도 빠르게 오간다. 그래서 성을 쌓고 창고를 채우는 일과 함께, 장사꾼과 농부가 안심하고 드나들 수 있게 세금을 가볍게 하거나 장터를 살리는 조치를 곁들였다. 전쟁과 살림을 동시에 챙긴 셈이다.
또한 태조는 혼인과 맹세를 넓게 활용했다. 큰 집안을 적으로만 돌리면 끝없는 싸움이 이어진다. 그래서 사돈을 맺고, 아우와 형처럼 부르는 의를 세워 서로의 체면을 살려 주었다. 전투에서 이긴 뒤에도 패자의 체면을 세워 주면, 남은 사람들이 새 질서 안으로 들어오기 쉽다. 태조가 내놓은 약속을 지키는 모습은 여러 고개와 물길에서 “믿을 만한 우두머리”라는 평판으로 돌아왔다.
때로는 단호함도 필요했다. 약속을 어기고 길을 끊어 나라살림을 위협하는 세력에는 재빠르게 군을 모아 성을 포위하고 항복을 받아냈다. 그러나 항복 뒤에는 더 큰 벌로 겁주는 대신, 다시는 싸움으로 돌아가지 않게 살 길을 열어 주었다. 이 균형이 통합의 속도를 높였다. 결국 태조는 물길과 장터, 혼인과 맹세, 상과 벌을 알맞게 섞어, 흩어진 땅과 마음을 한데 모았다.
과거제·문벌 귀족의 구조
과거, 문벌, 귀족, 구조라는 네 낱말을 놓고 고려의 틀을 살핀다. 나라가 커지면 일을 맡을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태조 이후 조정은 글과 기록, 법과 세금을 다룰 인재를 뽑기 위해 시험을 두었다. 글 읽기와 글쓰기, 역사와 예법을 묻는 문제로 사람을 골랐다. 시험을 통과한 이는 관리로 나아가며, 지방의 일이나 중앙의 문서를 맡았다. 이렇게 공개된 줄을 통해 평범한 집안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집안의 힘은 여전히 셌다. 오랫동안 높은 자리를 지켜 온 집안은 서로 혼인으로 엮이며 더 굳건해졌다. 이런 집안을 사람들은 문벌 귀족이라 불렀다. 그들은 땅과 사람, 장사길의 정보와 인맥을 쥐고 있어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먼저 움직일 힘이 있었다. 나라 역시 이들의 힘을 빌려 큰 공사와 전쟁을 치렀다. 그래서 시험과 집안의 힘은 서로 기대어 굴렀다. 시험으로 들어온 사람도 어느 순간 큰 집안과 인연을 맺고, 집안 출신도 시험을 통해 실력을 보였다.
이 구조에는 장점과 약점이 함께 있었다. 장점은 책임이 또렷하다는 점이다. 큰 집안은 체면을 걸고 지역을 돌봤고, 시험을 통과한 관리는 글과 법으로 일을 정리했다. 약점은 길이 좁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힘센 집안이 자리를 오래 붙잡으면 새 생각이 위로 올라가기 어렵다. 또 지방의 작은 소리보다 큰 집안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릴 때가 많았다. 그래서 조정은 지방에서 공을 세운 이를 중앙으로 불러 상을 주거나, 시험 과목을 손봐 실제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을 뽑으려 했다.
문벌 귀족의 자녀 교육은 어릴 때부터 글과 예절, 기록과 산술을 익히는 데 힘을 쏟았다. 집안마다 책을 모으고 스승을 모셔 아이들을 가르쳤다. 이렇게 쌓인 배움은 조정의 문서와 법을 다루는 실력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시골의 재능 있는 아이가 승려나 향교에서 배워 시험장에 오르는 길도 조금씩 넓어졌다. 닫힌 문과 열린 문이 함께 있던 시대였다.
개경의 도시생활과 경제
개경, 도시생활, 경제라는 낱말을 품고 거리로 나가 본다. 수도 개경은 왕과 조정이 머무는 자리이자, 여러 길이 모이는 큰 마디였다. 강을 따라 배가 드나들고, 사방의 고개에서 수레와 사람들이 몰려왔다. 시장은 아침마다 문을 열고, 곡식과 소금, 비단과 그릇, 약초와 종이가 오갔다. 저잣거리에는 장인들이 모여 칼과 가위, 비녀와 빗을 만들고, 길가에서는 먹을거리를 파는 소리와 냄새가 뒤섞였다.
도시가 바르게 돌아가려면 기준이 필요하다. 무게와 길이의 눈금을 맞추고, 값의 기준을 어지럽히는 행동을 막았다. 창고는 들고나는 곡식을 기록했고, 관리들은 장부를 맞추어 세금을 거두었다. 강가에는 배를 묶는 포구와 창고가 나란히 서서, 비가 많이 오거나 가뭄이 들어도 곡식이 끊기지 않게 했다. 길에는 돌과 나무를 깔아 진흙을 줄이고, 밤에는 등불을 밝혀 사람들의 발걸음을 지켰다.
사람 살림의 모습도 다양했다. 기와를 얹은 큰집과 초가가 이웃해 있었다. 장인과 상인, 관리와 승려, 지방에서 올라온 시험 준비생이 같은 거리를 오갔다. 절은 믿음의 공간이면서 쉼터와 배움터 구실을 했고, 곳곳의 서고에는 먼 지방에서 올라온 책과 문서가 쌓였다. 잔치와 의식이 많은 날이면 길에는 깃발이 나부끼고, 시장에는 먼 곳 물건이 더 많이 깔렸다.
개경의 살림은 지방과 이어져 있었다. 지방의 장터에서 모인 곡식과 가축, 베와 종이가 개경으로 올라왔고, 개경에서 만든 공예품과 문서, 법과 소식이 지방으로 내려갔다. 역참에서 말을 갈아타며 하루에 닿을 수 있는 거리마다 소식이 옮겨졌다. 이런 흐름은 전쟁이 없는 때에 특히 힘을 발휘했다. 평화의 시간이 길수록 시장은 풍성해지고, 장인의 솜씨는 더 정교해졌다. 도시와 시골이 서로 기대며 사는 구조가 굳어졌다.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문화재청 유적 안내 자료(개경·고려 관련)
초등 사회과 교육과정 역사 단원
한국 고고학회지 논문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