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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공부 9탄 조선 건국과 유교국가의 설계

by 솔찬기자 2025. 9. 3.

조선 건국과 유교국가의 설계 (조선명현필첩,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건국 명분과 권력 구조

 

건국과 명분, 권력과 구조라는 네 낱말을 먼저 떠올린다. 나라는 오래된 틀에서 벗어나 새 줄을 세우려 했고, 그 줄을 곧게 하려면 사람들이 납득할 이야기와 살림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백성을 편안하게 하겠다는 이유를 앞세우고, 전쟁과 가뭄으로 지친 살림을 고치겠다는 다짐을 내세웠다. 큰 싸움만으로는 마음을 얻을 수 없기에, 옛 제도를 바로잡고 상과 벌의 기준을 새로 세우겠다고 선언했다.

새 권력은 여러 갈래의 힘을 하나로 묶는 방법을 택했다. 군사를 움직이는 손, 곡식과 세금을 모으는 손, 기록과 법을 다루는 손을 나누되 서로 견주게 했다. 윗사람이 혼자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서로 살피는 눈을 두고, 지방의 목소리를 중앙으로 끌어올 통로를 만들었다. 옛 집안과 새 사람 사이의 갈등을 줄이려 혼인과 임무 배분으로 줄을 잇고, 공이 있는 이를 가려 상을 주어 불만을 낮췄다.

명분은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하늘과 조상에 고하는 의식을 바르게 하고, 백성에게 세금을 줄이거나 부역을 가볍게 하는 조치를 내놓았다. 억울한 재판을 다시 살피고, 어지럽던 땅 문서를 고쳐 글로 남겼다. 사람들은 이런 바뀜을 눈으로 보면서 새 나라의 뜻을 믿기 시작했다. 권력의 구조는 단단함과 유연함을 함께 담으려 했다. 큰일은 중앙에서 정하되, 현장의 일은 지방 관원이 책임을 지고 처리하게 했다. 말과 문서, 군사와 곡식이 같은 방향으로 흐르도록 길을 다듬은 것이 곧 건국의 완성에 가까웠다.

 

 

토지·군역·신분 시스템

 

토지와 군역, 신분과 시스템이라는 낱말을 붙잡고 바탕을 살핀다. 나라 살림의 첫째는 땅이다. 누구의 땅인지, 어느 만큼 거둘지, 흉년에 어떻게 나눌지 기준을 정해야 한다. 그래서 땅을 조사하고 문서를 새로 만들었다. 세금은 지나치게 무겁지 않게 하고, 곡식과 베처럼 내는 방법을 정리해 혼란을 줄였다. 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땅이나 곡식을 나누어 주고, 삶이 어려운 이에게는 빌려주는 창고를 마련했다. 이런 장치는 가뭄과 홍수 같은 자연의 흔들림을 버티게 하는 숨구멍이었다.

군역은 나라의 방패다. 농부가 밭을 지키면서도 나라의 부름에 응할 수 있도록 군사 조직을 정돈했다. 사람을 무리하게 빼앗지 않고, 훈련과 장비를 꾸준히 챙겨 전쟁이 닥쳐도 허둥대지 않게 했다. 말을 기르고 성과 창고를 손보는 일, 강과 바닷길을 지키는 일도 군역의 일부로 나누어 맡겼다. 이렇게 하면 평시에도 일과 훈련이 한몸처럼 이어져 헛도움이 줄어든다.

신분은 일과 책임을 나누는 기준이었다. 문과 무, 농과 상과 장의 일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필요했다. 신분을 이유로 고통을 주는 일은 줄이고, 일로 공을 세우면 길이 열리게 했다. 글을 배우고 시험을 통해 관직으로 나아가는 길을 두어, 집안이 아니라 실력으로 임무를 맡도록 유도했다. 물론 한계도 있었다. 오래된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험 과목과 선발 기준을 갈무리하며, 지방에서 일 잘하는 이를 중앙으로 불러 쓰는 장치를 더했다. 토지와 군역, 신분의 틀을 생활과 맞추는 일이 곧 나라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었다.

 

 

수도 한양의 계획도시성

 

수도와 한양, 계획과 도시성이라는 핵심 낱말을 마음에 두고 지도를 펼쳐 본다. 수도는 마음과 몸의 중심이다. 길과 강, 산과 바람을 함께 고려해 자리를 고르고, 성곽과 궁궐, 시장과 골목의 배치를 정리했다. 높은 산을 등지고 강을 내려다보는 자리에는 바람과 물의 흐름을 읽는 지혜가 담겼다. 성문은 사방을 향해 열고, 길은 시장과 관청, 창고와 배다리로 이어졌다. 물길은 배가 드나들기 좋게 손보고, 비가 많이 올 때도 넘치지 않게 둑을 다졌다.

한양의 골격은 기능을 먼저 생각했다. 왕이 일하는 궁궐과 관리가 모이는 관청은 중심에 두고, 백성이 모이는 시장과 장터는 물길과 가깝게 배치했다. 창고는 강가와 성벽 근처에 나누어 두어, 더운 날과 추운 날 모두 곡식을 지키기 쉬웠다. 길목마다 역참을 두어 소식이 막히지 않게 했고, 밤에는 등불을 밝혀 안전을 지켰다. 물과 길, 성과 시장의 거리를 알맞게 두어, 사람이 걷고 수레가 다닐 때 막힘이 적게 했다.

도시는 배움과 예의의 중심이기도 했다. 글을 가르치는 학교와 책을 모으는 서고, 믿음을 나누는 절과 사당이 골고루 자리했다. 장인은 구역을 나누어 공방을 두고, 상인은 창고와 가까운 곳에 가게를 내었다. 쓰레기와 오수를 버리는 규칙, 불을 다루는 규칙 같은 생활 약속도 정해, 불편과 사고를 줄였다. 이런 계획은 눈에 보이는 건물만이 아니라, 사람의 발걸음과 말의 흐름, 장사와 의식의 시간표까지 바꾸었다. 수도를 바로 세우는 일은 곧 나라의 속살을 가지런히 하는 일과 같았다.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문화재청 유적 안내 자료(한양 성곽·궁궐 관련)

초등 사회과 교육과정 역사 단원

한국 고고학회지 논문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