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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공부 14탄 식민지 시기 통치와 일상, 저항

by 솔찬기자 2025. 9. 5.

식민지 시기: 통치와 일상, 저항 (일제강점기 기사가 실린 이탈리아 신문,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통치 체제와 경제 수탈 구조

 

통치 체제와 경제 수탈 구조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쉽게 말해 바깥 힘이 나라살림의 큰 권한을 쥐고, 법과 세금, 토지와 물산의 흐름을 자기 방식에 맞게 바꾸어 놓은 모습이라 보면 된다. 위에서 내려보는 중앙 관리와 곳곳을 챙기는 지방 관리, 촘촘한 경찰과 보고 체계가 만들어져, 말과 명령이 한 방향으로만 흘렀다. 글과 도장을 가진 문서가 기준이 되었고, 그 문서를 만드는 권한이 바깥 손에 있었다.

땅과 곡식을 다루는 방법이 크게 바뀐 것도 핵심이다. 토지의 주인과 경계를 다시 조사한다는 이름으로, 문서가 약하거나 오래된 관습으로 지켜 오던 땅은 새 기준에 밀려났다. 그 과정에서 많은 농가가 소작으로 내려앉거나 빚을 지게 되었고, 일부 큰 집단과 기관이 넓은 땅을 묶어 맡았다. 숲과 광산 같은 자원도 허가와 면허를 통해 관리되었다. 허가장을 가진 쪽은 채취와 판매에서 앞자리를 차지했고, 이익은 바깥으로 더 많이 흘렀다.

곡식과 물건의 값과 길도 달라졌다. 쌀과 콩 같은 먹을거리는 바다를 통해 밖으로 많이 나갔고, 값싼 공산품과 철물은 배를 타고 안으로 들어왔다. 항구와 기차길, 창고의 문은 바깥 물건이 오가는 데 맞춰 열리고 닫혔다. 값의 차이를 노린 거래가 늘면서, 들판의 살림은 흔들렸고, 도시의 장터는 더 커졌다. 세금과 수수료, 운송비의 기준도 바깥의 표와 맞추어 정해졌다. 이 표는 우리에게 불리한 눈금을 담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모든 곳이 똑같이 움직인 것은 아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관개 시설과 창고가 정비되어 수확이 늘기도 했다. 또 장터와 항구 주변의 집들은 새 일거리를 얻었다. 다만 그 이익이 고르게 퍼지지 못했고, 힘 센 쪽으로 더 많이 쏠리는 경향이 컸다. 통치 체제와 경제의 큰 바퀴가 바깥에서 돌아가면, 안쪽 사람들의 선택지는 줄어든다. 이런 구조가 오래 이어지자, 일상 속의 불편과 억울함이 천천히 쌓여 갔다.

 

 

산업·교통·교육의 양면성

 

산업과 교통, 교육의 양면성을 함께 본다. 겉으로 보면 기계와 공장, 전기와 통신, 기차길과 항구 같은 시설이 빠르게 늘었다. 큰길과 다리가 놓이면 물건이 빨리 오가고, 도시에는 새 가게와 공장이 자리 잡았다. 전기를 쓰는 집과 가게가 늘면서 밤의 시간이 길어졌다. 학교도 더 많이 세워져 글과 셈을 배우는 아이가 늘었다. 신문과 잡지, 잡화점과 병원 같은 새 풍경이 도시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이 변화에는 그늘도 있었다. 공장과 광산의 일터에는 긴 시간과 위험한 환경이 따라붙었다. 어린 손과 여인의 손까지 일터로 불려나갔고, 임금과 안전을 둘러싼 다툼이 잦았다. 멀리 떨어진 땅에서 일할 사람을 모으는 과정에서 강제로 동원된 이도 있었다. 기차길과 항구의 길목은 바깥 물건이 오가는 데 더 맞춰져, 들판의 사람들은 자기 물건을 내다 팔 틈이 좁았다. 도시와 시골의 차이는 더 커졌고, 같은 도시 안에서도 넉넉한 동네와 어려운 동네가 갈라졌다.

학교의 문은 넓어졌지만, 배움의 내용과 기회는 고르지 못했다. 말과 글을 가르치는 방식에서 차별과 제한이 따랐고, 높은 배움으로 나아가는 길목마다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어떤 학교는 손으로 하는 기술을 가르쳐 새 일자리에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많은 아이는 곧장 집의 살림을 돕거나 낮은 임금의 일터로 나아갔다. 배움을 통해 삶을 바꾸려는 꿈은 컸지만, 제도와 현실의 간격이 그 길을 자주 막았다. 이렇게 산업·교통·교육의 변화는 편리함과 불편함을 함께 품은 채 사람들의 하루를 흔들었다.

 

 

독립운동 스펙트럼과 문화

 

독립운동의 스펙트럼과 문화라는 두 갈래를 함께 그려 본다. 바깥의 통치가 굳어질수록, 안쪽에서는 여러 모양의 움직임이 자랐다. 봄하늘 아래 전국에서 만세를 부른 큰 움직임은 많은 이의 마음을 한 줄로 엮었다. 거리의 외침은 곧장 총칼을 이길 수 없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오래 남아 사람들의 용기를 북돋았다. 밖으로 나간 이들은 멀리 있는 도시에서 모임을 꾸려 나라의 틀을 세우려 했고, 안쪽의 이들은 글과 학교, 장터와 절, 교회와 서당을 발판으로 힘을 모았다.

움직임의 방법은 다양했다. 어떤 이는 글과 말로 사람을 깨우치려 했고, 어떤 이는 공장과 학교에서 모여 규칙을 지키라고 요구했다. 또 어떤 이는 산과 국경을 넘어 무장을 갖추고 싸우는 길을 택했다. 학생과 장인, 농민과 상인, 여성과 어른, 종교인과 예술인까지 자리와 나이를 가리지 않았다.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돈과 물자를 모아 보내는 손길도 있었다. 서로의 방법은 달랐지만, 바라는 마음은 같았다. 내 삶의 자리를 스스로 고르고, 우리 말을 마음 놓고 쓰며, 땀의 값을 스스로 정하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문화의 바닥에서도 조용한 변화가 이어졌다. 노래와 시, 연극과 그림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등불이 되었다. 옛이야기와 민속을 모으고, 잊힐 뻔한 말과 글을 되살리는 일도 계속되었다. 방과 후에 모여 글을 익히는 밤학교, 골목에서 이어진 작은 강연과 독서 모임, 아이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가정의 시간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큰 힘이었다. 검열과 감시가 있어도 사람들은 틈을 찾아 서로 배우고 위로했다. 문화는 싸움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라, 살아남는 법이자 다시 일어서는 법이었다.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문화재청 유적 안내 자료(근현대 유적 관련)

초등 사회과 교육과정 역사 단원

한국 근현대사 관련 학회지 논문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