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한국사 공부 17탄 조선의 세종대왕이 만든 것들 훈민정음 말고도

by 솔찬기자 2025. 9. 6.

조선의 세종대왕이 만든 것들 (휴대용 앙부일구, 해시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세종 시대의 문제의식과 실용의 방향

세종, 과학, 백성, 실용이라는 네 낱말로 시작해 본다. 나라가 오래가려면 글과 예만 다듬어서는 모자라다. 밭에 물을 대는 법, 하늘을 읽어 때를 맞추는 법, 몸이 아플 때 쓰는 약을 모으는 법이 함께 있어야 한다. 세종 때의 새물건과 새제도는 이런 생각에서 나왔다.
세종은 궁궐 안의 학문만 키우지 않았다. 집현전을 두어 글을 연구하게 했지만, 글은 바깥살이와 이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논밭과 하늘, 시각과 음악, 약과 말소리까지 삶에 바로 닿는 일부터 손봤다. 기술자는 신분이 낮아도 발탁했고, 장영실 같은 인물이 궁궐의 중한 일을 맡았다. 현장에서 답을 찾자고 했고, 만들면 꼭 써 보며 고쳤다.
이때의 공통된 빛깔은 “백성에게 바로 쓰이는가”였다. 관청의 시계가 스스로 종을 쳐야 밤 경계가 바로 서고, 해가 비치는 곳에서도 누구나 시간을 볼 수 있어야 장터와 관청이 같은 시각에 움직인다. 비가 얼마나 왔는지 잴 수 있어야 흉년의 무게를 글로만 말하지 않고 숫자로 증명할 수 있다. 농사책이 한문 고사로만 채워지면 밭머리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쉬운 말로, 그 땅의 경험을 모아 책으로 묶었다.
세종은 제도도 함께 손봤다. 땅의 등급과 해마다 달라지는 수확을 함께 따져 세금을 매기는 공법의 틀을 마련했고, 큰 흉년에는 창고 곡식을 풀어 굶주림을 덜었다. 이런 일은 기술과 제도의 두 날개가 맞물려야 가능했다. 하늘을 재는 기구와 물시계가 시간을 잡아 주고, 농사책과 수리 시설이 밭을 살리며, 약과 음악과 말소리의 정비가 사람의 몸과 마음과 소통을 바르게 했다.

 

 

하늘과 시간: 시계, 별기구, 역법, 비의 양

해시계, 물시계, 별기구, 측우기라는 네 가지로 줄기를 잡는다. 먼저 시간을 재는 기구다. 궁궐 한복판에는 물이 흘러 스스로 종을 치는 물시계가 섰다. 밤에도 시간을 알리기 위해서다. 해가 떠 있을 때는 해시계를 써서 누구나 마당에서 시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가 비추는 곳이면 읽을 수 있게 반구 모양 판을 깔고 시각선을 그었다. 낮과 밤을 잇는 두 시계가 있어 의식, 군사, 문서의 약속이 한결 가지런해졌다.
하늘을 살피는 기구도 잇달아 만들어졌다. 별의 움직임을 맞춰 보는 틀, 해와 달의 길을 가늠하는 틀을 세워 천체를 더 정확히 읽었다. 하늘을 제대로 읽어야 절기를 바르게 셈하고, 절기를 바르게 셈해야 씨 뿌리고 거두는 때를 놓치지 않는다. 이 바탕 위에 역법서를 엮어, 나라 안에서 쓸 달력과 계산법을 정리했다. 달과 해를 함께 따지는 셈법을 마련해 해마다 생기는 오차를 줄이려 했다.
비의 양을 재는 기구도 세웠다. 그릇에 내린 비를 모아 높이를 재면, 한 달과 한 해의 비가 얼마나 왔는지 숫자로 알 수 있다. 전에는 “비가 많았다, 적었다”라고만 말했지만 이제는 “얼마나”라고 물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간단한 기구 하나로 벼가 쓰러진 논과 말라버린 밭의 차이가 문서에 정확히 남았다. 관아는 숫자를 근거로 도움을 정하고, 다음 해의 씨앗과 거둔 곡식을 어떻게 나눌지 의논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책상 위에서만 이룬 일이 아니었다. 만들고 세우고 실패하면 다시 고쳤다. 물이 새면 막고, 해 그림자가 흐리면 판을 갈아 새로 그었다. 궁궐의 종각에서 스스로 울리는 소리는 밤을 지키는 군졸에게도, 도성을 오가는 장사꾼에게도 같은 기준이 되었다. 하늘과 시간이 바르게 잡히자 의식과 행정의 발맞춤이 수월해졌다. 기록은 촘촘해졌고, 다툼은 줄었다.

 

 

밭과 약, 소리와 말: 농사책, 의술, 음악, 소통의 정비

농사책, 향약, 음악, 말소리라는 네 낱말로 갈래를 맺는다. 밭을 살리는 첫걸음은 그 땅의 말을 쓰는 것이다. 농사짓는 이가 바로 읽을 수 있도록, 그 지역에서 실제 쓰는 방법을 모아 농사책을 만들었다. 씨 뿌리는 깊이, 모내기 간격, 김매는 때, 비료로 쓸 재의 양 같은 살림살이 지식이 고을들에서 올라왔다. 높은 말보다 손의 경험이 앞섰고, 그래서 책은 밭머리에서 쓰였다.
몸이 아플 때 쓸 약도 모았다. 풀과 나무, 광물과 짐승에서 얻는 약재를 지방의 경험과 함께 정리했다. 고을에서 전해 내려온 처방을 모아 상처, 열, 기침, 산모의 위험 같은 일상 병을 다루는 길을 만들었다. 귀한 약만 적지 않고 구할 수 있는 약을 중심에 두어, 시골집에서도 따라 할 수 있게 했다. 봄가을에 흔한 병을 다루는 방법, 돌림병이 돌 때의 격리와 소독 같은 살림 지침도 함께 담았다.
소리와 음악도 새로 다듬었다. 종과 돌로 내는 예악의 소리를 맞추고, 곡의 길이와 박을 기록하는 보기를 만들었다. 소리를 눈으로 읽을 수 있게 되자, 궁중의 예악이 고르게 전해졌다. 군사 신호와 관청 의식도 같은 박자에 움직일 수 있었다. 음악은 즐김만이 아니라 질서를 세우는 도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말소리 정비도 빼놓을 수 없다. 새 글자를 만든 일은 여기서 길게 말하지 않지만, 소리를 바르게 적고 읽는 원칙을 세운 덕에 관청 문서와 책이 고르게 퍼졌다. 더 나아가 시골말의 발음까지 함께 살피는 책을 만들어, 서로 다른 고을의 소리가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지 기록으로 남겼다. 글과 소리의 사이가 가까워지면 배움의 문턱이 낮아진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책을 읽어 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처럼 세종 때의 새물건과 새제도는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하늘을 재고 시간을 맞추는 기구가 삶의 리듬을 바로잡고, 비의 양을 재는 그릇이 굶주림을 수로 바꾸어 논의 근거로 세운다. 농사책은 밭을 살리고, 약의 책은 몸을 살린다. 음악은 예를 살리고, 말소리의 정비는 배움을 살린다. 궁궐에서 시작됐지만 끝은 늘 백성의 살림이었다. 그래서 오늘 남은 유산도 장식품이 아니라 생활의 도구로 읽힌다. 만들고 고치고 쓰는 일을 묵묵히 이어 간 결과다.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세종실록.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교육과정 기준서, 통합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