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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공부 20탄 임진왜란 속 영웅들 이순신 말고 또 누가 있었을까?

by 솔찬기자 2025. 9. 7.

임진왜란 속 영웅들 (임진록,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의병의 등장과 지역 방어: 곽재우·조헌과 영규·정문부

의병, 곽재우, 조헌, 정문부라는 네 낱말로 시작해 본다. 전쟁이 들이닥치면 나라의 군대만 싸우지 않는다. 고을마다 농사짓던 사람, 장터의 상인, 산사의 승려가 스스로 모여 길목을 지키고 성을 세운다. 임진왜란의 첫해부터 이런 움직임이 빠르게 퍼졌다. 힘의 바탕은 거창한 무기가 아니라 땅을 잘 아는 눈과 서로를 믿는 마음이었다.
곽재우는 낙동강을 끼고 선 고을에서 먼저 일어섰다. 붉은 옷을 입고 싸웠다는 이야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붉은 장수라 불렀다. 작은 군대로 큰 길을 막고 물가의 여울목을 지키며 적의 발을 묶었다. 밤에는 불을 여러 곳에 피워 병력이 많은 듯 보이게 하고, 낮에는 좁은 길로 유인해 한꺼번에 몰아쳤다. 이처럼 지형을 아는 지혜와 빠른 발놀림이 초반의 혼란을 붙잡았다.
조헌과 영규는 서로 힘을 합쳐 성을 되찾는 데 앞장섰다. 조헌은 글을 읽던 선비였고, 영규는 절에서 수행하던 승려였지만, 전쟁 앞에서는 둘의 길이 하나로 모였다. 모인 사람들은 창과 활을 쥐고, 누군가는 화약과 화살을 만들고, 누군가는 군량을 모았다. 산과 들의 길을 잘 아는 이들이 앞장을 서서 적의 허리를 찔렀다. 성을 되찾는 싸움은 단번에 끝나지 않았고, 몇 번의 오르내림 끝에야 깃발이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가 쓰러졌지만, 고을 사람들은 다시 모여 깃발을 세웠다.
정문부는 북쪽의 먼 고을에서 이름을 남겼다. 적이 북녘까지 치고 올라오자 그는 흩어진 사람을 모아 길과 고을을 지켰다. 북쪽의 산과 강은 남쪽과 달랐고, 겨울바람도 거셌다. 그는 그것을 아는 이들을 모아 산줄기와 강줄기를 바탕으로 방어선을 짰다. 빠르게 나타나고 빠르게 사라지는 싸움으로 적의 숨을 끊었다. 멀리 떨어진 고을의 소식이 천천히 전해지던 때에, 정문부의 이름은 사람들의 입을 타고 남으로 내려왔다. 북쪽도 버티고 있다는 소식은 남쪽의 마음을 세웠다.
의병이 만든 승리는 화려하지 않았다. 오래된 활, 고쳐 쓴 갑옷, 각자 들고 나온 창과 칼이 전부였다. 하지만 서로의 손을 믿는 힘이 있었다. 누구는 군량을 지고, 누구는 화살을 만들고, 누구는 길잡이를 맡았다. 이처럼 의병의 싸움은 고을 전체가 움직이는 일이었다. 승리의 기록에는 장수의 이름이 남지만, 그 이름 뒤에는 이름 없는 수많은 손과 발이 있었다. 임진왜란에서 의병이 한 일은 성을 되찾고 길을 지키는 일만이 아니었다.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우고, 흩어진 고을을 다시 잇는 일이기도 했다.

 

 

관군 장수들의 결기와 지휘: 김시민의 진주성, 권율의 행주 산성

김시민, 진주성, 권율, 행주라는 네 낱말로 줄기를 잡는다. 나라의 군대도 곳곳에서 버팀목이 되었다. 관군의 장수들은 훈련된 병사를 모아 성을 지키고 강을 건넜다. 전쟁 초기에 패배가 이어졌지만, 사람들은 곧 흩어지지 않았다. 장수의 지휘가 바르게 서고, 고을 사람들이 힘을 보태면서 성 하나, 강 하나가 다시 나라의 것이 되었다.
김시민은 남쪽의 큰 성에서 적을 맞아들였다. 성은 높고 강은 가까웠지만, 화살과 화약, 돌과 통나무가 넉넉해야 오래 버틴다. 그는 성 안의 사람을 나눠 맡기고, 낮과 밤의 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누군가는 성벽을 보수하고, 누군가는 화살과 돌을 나르고, 누군가는 상처를 돌보았다. 성문을 닫고 버티는 싸움은 하루이틀로 끝나지 않았고, 적의 파도 같은 공격이 거듭되었다. 김시민은 작은 승리를 모아 큰 승리를 만들었다. 적을 성벽 아래로 끌어당긴 뒤, 한꺼번에 쏟아붓는 방식으로 성벽을 지켰다. 고을 사람들은 서로 음식을 나누고 군졸의 옷을 꿰매며, 안과 밖이 하나가 되었다. 이 승리는 남쪽의 전선에서 꺼져가던 불씨를 살렸다.
권율은 한강 북쪽의 산성에서 결전을 택했다. 강을 끼고 선 산성은 올라가기도 어렵고 내려오기도 어렵다. 적은 여러 갈래로 몰려왔고, 그 수가 많았다. 권율은 산성의 길과 경사, 바람의 방향까지 살피면서 지휘했다. 적이 성벽에 닿기 전에 길목에서 힘을 빼고, 성벽 아래에서는 돌과 통을 아끼지 않았다. 백성의 손으로 만든 바구니와 통나무가 무기처럼 쓰였고, 고을마다 모은 군량이 버팀의 바닥이 되었다. 긴 하루가 지나고, 적이 물러나는 순간에도 그는 쫓지 않았다. 무리한 추격보다 성을 지키는 것이 먼저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승리는 수도 가까운 지역의 불안을 가라앉히고,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신호가 되었다.
관군의 지휘는 도성과 고을의 살림과 이어졌다. 장수의 결단 하나가 성의 운명을 가르기도 했지만, 그 결단이 빛을 내려면 사람들이 움직여야 했다. 김시민의 성과 권율의 산성 모두, 군졸과 백성이 자리를 나눠 맡은 결과였다. 승리는 두 가지를 다시 보여준다. 첫째, 준비가 힘이다. 화살과 돌, 군량과 물이 넉넉해야 끝까지 버틴다. 둘째, 지휘가 길이다. 지형을 읽고 때를 고른 장수의 판단이 성의 문을 닫고 열었다. 이름은 둘이지만, 승리는 많은 이의 것이다.

 

 

평범한 손들이 만든 승리: 논개, 승병, 이름 없는 사람들

논개, 승병, 군량, 이름없는이라는 네 가지 말로 갈래를 맺는다. 전쟁의 이야기는 장수의 공으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성과 강의 현장에는 평범한 손이 많았다. 그 손들은 돌을 나르고, 화살을 깎고, 상처를 싸매고, 무너진 담을 다시 세웠다. 사람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보초를 서며 하루를 버텼다. 그 작은 버팀이 모여 전선을 만들었다.
논개에 관한 이야기는 강가의 바람처럼 오래 전해진다. 성이 함락되고 남강에 불빛이 흔들리던 밤, 한 여인이 적장을 끌어안고 물로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다. 전해오는 말은 다 똑같지 않다. 어느 자리였는지, 누구였는지, 말이 조금씩 다르다. 그렇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같다. 무너진 성에서 누군가가 목숨을 걸어 적의 기세를 꺾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그 이름을 오래 기억했고, 성을 되찾지 못한 고을의 슬픔을 그 이름에 함께 얹었다. 전쟁에서 영웅은 갑옷만 입지 않는다. 이름이 남은 여인도, 이름이 남지 않은 여인도 많았다.
승병의 움직임도 컸다. 산사의 스님들이 북을 울리고 모였다. 평소에는 경전을 읽고 수행을 했지만, 전쟁이 나자 장삼을 걷어붙이고 창을 들었다. 절은 산과 가까워 길을 잘 알았고, 공동체로 살던 습관 덕분에 빨리 모이고 빨리 움직였다. 어떤 이들은 앞에서 싸웠고, 어떤 이들은 뒤에서 군량과 약재를 모았다. 산이 많은 나라에서 승병의 발자국은 전선 곳곳에 찍혔다.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대장간의 불은 쉬지 않았다. 끊어진 칼을 고치고, 화살촉을 새로 만들었다. 나룻배를 모는 이는 밤낮 없이 사람과 짐을 건넜다. 고을의 여인들은 쌀을 씻고 모포를 꿰매어 성으로 올렸다. 아이들은 길목으로 뛰어가 소식을 전하고, 노인들은 밤새 밥을 지어 보초에게 건넸다. 전쟁은 한때의 큰 싸움 같지만, 실제로는 하루하루의 살림으로 버티는 일이다. 그 살림이 이어졌기에 성이 버티고, 길이 다시 이어졌다.
평가의 말은 간단하다. 이순신만 영웅이 아니다. 그는 바다에서 길을 열었고, 뭍에서는 또 다른 이들이 길을 열었다. 의병과 관군, 여인과 승려, 장인과 나룻군이 한 덩어리가 되어 전쟁의 흐름을 바꾸었다. 이름이 크게 남은 이도 있고, 기록 한 줄 없이 사라진 이도 많다. 그러나 승리는 언제나 많은 손이 만든다. 임진왜란의 영웅은 한 사람이 아니라, 서로 기대 선 모든 사람이었다.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선조실록》, 《징비록》.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교육과정 기준서, 통합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