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가격은 현금흐름과 할인율, 위험 프리미엄과 유동성, 서사와 기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결정된다. 이 글은 공정가치의 ‘하나의 점’이 아니라 ‘범위’라는 관점에서 가치 판단의 좌표계를 세우고, 버블이 형성·팽창·붕괴로 이어지는 경로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지표와 행동 패턴을 묶어 정리한다. 이어서 가계·사업의 의사결정을 포지션 크기, 레버리지 상한, 유동성 버킷, 리밸런싱 규칙 같은 절차로 번역해, 가격 변동을 견디는 시스템을 제시한다.
자산가격을 움직이는 축과 ‘공정가치 범위’의 설정
자산가격의 출발점은 미래 현금흐름의 크기와 타이밍, 그리고 이를 현재로 환산하는 할인율이다. 현금흐름은 기업의 매출·마진·세후이익과 잉여현금, 부동산의 임대료·공실률·유지보수비, 채권의 쿠폰과 상환 구조 같은 실체적 요소로 구성된다. 할인율은 무위험금리와 위험 프리미엄의 합으로 표현되며, 전자는 거시 환경과 통화정책의 경로에, 후자는 경기 민감도·재무구조·산업 구조 변화·지배구조와 같은 개별 리스크에 반응한다. 여기에 시장 유동성과 포지션의 쏠림이 가격의 단기 괴리를 키운다. 거래대금·호가 스프레드·레버리지 비용이 낮아질수록 동일한 뉴스에 더 큰 가격 변동이 발생하고, 반대로 유동성이 얇을 때는 작은 매도만으로도 급락이 발생한다. 결국 공정가치는 ‘한 점’이 아니다. 시나리오별 현금흐름과 할인율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범위’이며, 그 범위 안에서 투자자들의 기대와 제약이 가격을 밀어 올리거나 끌어내린다. 이 범위를 실무적으로 잡으려면, 수익성(ROIC·영업이익률), 성장률(매출·사용자·객단가), 자본집약도(감가상각·CAPEX/매출), 재무 안전성(순차입금/EBITDA, 이자보상배율), 회수력(현금전환주기, 임대료 회수율)의 축을 표준화해 스코어링하고, 거시축(무위험금리, 신용스프레드, 환율 변동성)과 결합해 시나리오를 만든다. 상대가치와 절대가치를 병행하는 것도 유효하다. 상대가치는 동일 업종의 PER·EV/EBITDA·P/B, 부동산의 임대수익률·매매/전세·소득 대비 주택가격(PIR), 채권의 크레딧 스프레드 비교를 통해 “같은 바구니 안에서 비싼가 싼가”를 본다. 절대가치는 할인현금흐름(DCF), 잔여이익모형(RIM), 부동산의 순영업소득(NOI)/자본화율(Cap rate), 채권의 듀레이션·컨벡서티로 “통으로 보면 얼마가 합리적인가”를 본다. 또한 가격을 가격으로 설명하는 반사성(reflexivity)도 고려해야 한다. 가격 상승은 담보가치를 높여 레버리지와 신규자금 유입을 촉진하고, 이는 다시 가격을 밀어 올린다. 반대로 하락은 담보가치를 훼손해 마진콜과 강제청산을 유발하며, 하락의 가속도를 만든다. 이런 메커니즘 때문에 ‘가치 대비 가격’뿐 아니라 ‘가격이 가치를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동시에 본다. 초과열 구간에서는 몇 가지 공통적인 미세 신호가 앞서 관측된다. 거래 회전율의 급등과 신용잔고 증가, 신규계좌·신규사업자 등록의 비정상 확대, 상장·분양·발행 물량의 급증, 멀티플 확장의 속도가 이익·현금흐름 성장 속도를 앞지르는 현상, 검색량·SNS 언급량 급증과 더불어 “대체 불가능한 새 패러다임”·“이제는 다르다” 같은 서사의 반복이 그것이다. 반대로 과매도 구간에서는 거래가 말라붙고, 배당·임대·쿠폰 같은 현금흐름 수익률이 무위험금리 대비 크게 벌어지며, 신용스프레드가 급팽창한 뒤 완만히 축소되기 시작한다. 공정가치 범위를 숫자와 서사의 두 축에서 동시에 좁혀 나갈 때, 단기 노이즈와 장기 트렌드를 구분하는 능력이 생긴다.
버블의 형성과 팽창·전환·붕괴: 징후 지도와 행동 패턴
버블은 새로운 수요의 ‘변위(displacement)’로 시작해, 수익의 ‘가시성’이 높아지며 확산되고, ‘레버리지’와 ‘서사’가 결합하면서 팽창한다. 이후 ‘유동성의 전환점’이 오고, 최종적으로 ‘신뢰 붕괴’로 끝난다. 변위는 기술·규제 변화·금리 하락·인구구조 전환·공급 제한 같은 요인에서 발생한다. 초기 국면에서는 소수의 선도 주체가 확실한 효용을 보여 주고, 가격 상승은 실적 개선으로 뒷받침된다. 확산 국면에선 추종 자본과 모방 상품이 늘며, 거래 회전율·신용잔고·마진 융자·담보인정비율(LTV)·고위험 대출 비중이 동시에 오른다. 이때 언어가 바뀐다. TAM(잠재시장)이 끝없이 확장된다는 서사, 네트워크 효과의 과장, 낮은 할인율의 영구 지속 가정, 실물 제약과 규제 리스크의 망각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팽창 말기에는 가격이 실적을 앞지르며 멀티플이 수직 상승한다. 공모·분양·증자·토큰 발행 같은 ‘공급’이 급격히 늘고, 초보자·외부자금·차입자 참가가 몰리며, 수익률의 분산은 줄고 상관관계는 1에 수렴한다. 경계 신호는 다음과 같이 묶인다. 첫째, 신용지표—마진 융자 급증, 카드·소액신용의 투자 전용 활용, 기업부채의 만기 단축, 고수익채 발행 급증. 둘째, 유동성 지표—거래대금 과열, 호가 스프레드 비정상 축소, 가격제한폭 상단 빈도 증가, 시장 심도 악화. 셋째, 실적·현금흐름—매출 인식의 공격화, 재고자산·미수금의 동시 확대, 영업현금흐름/순이익 괴리, 부동산의 임대수익률 하락 속도 > 금리 하락 속도. 넷째, 참여자 행동—새벽 대기열, 청약 과열, 가격대비 품질 하락에 대한 무감각, 손실 회피보다 놓칠 두려움(FOMO)의 우세. 전환점은 보통 ‘유동성의 가격’ 변화에서 시작된다. 정책의 긴축 신호, 크레딧 이벤트, 환율 급변, 담보가치 하락에 따른 마진콜이 겹치면, 레버리지 포지션이 연쇄 청산을 맞는다. 이때 반등은 얕고 짧다. 호가 스프레드가 넓어지고, 미체결 매도 잔량이 누적되며, 좋은 뉴스에도 주가·가격이 오르지 않는 ‘뉴스에 못 오르는’ 현상이 나타난다. 붕괴 국면에서 시장은 ‘가격을 방어’하기보다 ‘현금흐름을 방어’하는 주체에게 유리하게 재편된다. 배당·쿠폰·임대료의 안정성이 프리미엄을 받고, 현금이 있는 주체는 강제 매각 자산을 할인된 가격에 흡수한다. 버블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의 시간은 길다. 과거 고점 대비 반등률이 높은 종목·지역·자산이 다음 하락의 선두가 되며, ‘오래 버틴다’는 자기확신은 손실의 반복으로 귀결되기 쉽다. 이 과정의 교훈은 간단하다. 상승장의 이유가 사라졌는지보다 ‘상승을 가능케 했던 자금의 성격과 레버리지의 조건’이 바뀌었는지를 먼저 본다. 조건이 바뀌었다면, 가격은 결국 그 방향으로 수렴한다.
포지션·레버리지·유동성으로 번역하는 대응 규칙
버블을 ‘예측’하려 하기보다 ‘노출’을 관리하는 규칙을 미리 문서화하면, 의사결정은 단순해진다. 첫째, 포지션 크기 원칙. 단일 아이디어·단일 지역·단일 테마의 비중 상한을 정해(예: 자산군 30%, 국가 25%, 산업 20%, 단일 종목·단일 프로젝트 5% 등) 리스크가 한 축에 집중되지 않도록 한다. 기대 수익률이 아무리 높아도, 현금흐름 변동성과 상관관계, 하방 유동성(팔 수 있는가)을 함께 점수화해 포지션을 줄인다. 둘째, 레버리지 상한. 가계는 총부채원리금/가처분소득(DSR), 총부채/순자산, 변동금리 노출 비중의 상한을 수치로 박는다. 사업은 순차입금/EBITDA, 이자보상배율, 약정 코버넌트의 헤드룸을 월간 대시보드로 관리하고, 만기 사다리 구조(연도별 상환액 상한)를 만든다.
3년 쓰임을 커버하는 중기 버킷, 3년+의 장기 버킷으로 나눠 금리·인출 가능성·세후 수익을 기준으로 배치한다. 버블 말기에는 중기 버킷의 현금·단기채 비중을 늘리고, 장기 버킷의 리스크 자산은 리밸런싱 규칙(예: 목표 비중 ±5% 밴드)을 기계적으로 적용한다. 넷째, 밸류에이션·품질·금리의 삼중 체크. 주식은 ROIC>WACC, 잉여현금흐름 양(+), 재무 레버리지 축소 추세, 유상증자·자기주식·배당 정책의 질, 회계 품질(현금흐름/순이익)이 기준선을 넘어야 비중을 유지한다. 부동산은 NOI 대비 Cap rate이 무위험금리+위험 프리미엄을 충분히 상회하고, 공실·임차인 다변화·대체 용도 가능성의 질적 요소를 확인한다. 채권은 듀레이션과 신용스프레드 민감도를 합산해 금리·크레딧 동시 충격 시 손실 한도를 수치화한다. 다섯째, 스트레스 테스트. 금리 +200bp, 임대료 -10%, 매출 -15%, 환율 +10% 같은 합성 시나리오를 분기마다 돌려 현금흐름 코브넌트 위반 가능성을 체크하고, 위반 전 자동 감속 규칙(배당 축소·CAPEX 연기·재고 감축)을 발동한다. 여섯째, 행동 규칙. 가격 목표 대신 조건 목표를 쓴다. “PER 30배면 판다”가 아니라 “현금흐름/순이익 괴리 30%↑ 2분기 지속, 신용잔고/거래대금 동반 급증 3주 지속, Cap rate<무위험금리+2%p 2분기 지속” 같은 조건을 트리거로 삼는다. 일곱째, 소통과 문서화. 가족·파트너와의 합의를 문서로 남기고, 예외의 조건과 종료 조건을 함께 정의한다. 마지막으로, 실패의 비용을 통제한다. 최대 낙폭 허용치(Max DD)와 회복 시간 허용치(MDT)를 정하고, 이를 넘어서는 포지션은 “좋아 보여도” 줄인다. 버블은 인간 심리의 반복이지만, 시스템은 반복을 약화한다. 규칙이 있으면, 서사와 소음은 덜 무섭다. 현금흐름을 지키는 쪽이 결국 살아남는다.